관정(冠廷)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께서 지난 9월 13일 오전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이종환 회장님은 한국의 페스탈로치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교육자이며 사상가이자 자선사업가인 페스탈로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 빈민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만들어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에 힘썼다.
페스탈로치의 묘 비문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빈민의 구원자’, ‘고아의 아버지’, ‘인류의 교사’, 모든 것은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 위에 축복이 있기를.”
1조7000억 인재양성 위해 기부
이 비문 내용을 보면 이 회장님의 인생역정이 페스탈로치가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여정과 똑같은 것 같다. 이 회장님은 ‘일류 인재 육성’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라고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인재 양성에 모두 기부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우수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평생 모은 재산 1조 7000억원을 기부하여 장학재단을 운영했다.
이 회장님과 내가 처음 인사를 나눈 것은 2000년 5월이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장인 나는 공익법인 등 각종 법인 설립의 인허가와 법인을 지도·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였다. 2000년 5월 서울시교육청에 오셔서 ‘일류 인재 육성’을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서울시내의 장학재단 중 가장 많은 액수인 2000억원의 기금으로 장학재단을 출범하여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15년 후 2015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1조원의 장학재단으로 성장시키셔서 모든 사람들이 또다시 깜짝 놀랐고 감동했다.
이종환 회장님은 매년 국내 200명, 해외유학 300명의 장학생을 뽑아 150억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2022년부터는 국내 500명, 해외 500명 등 1000명으로 확대하여 지금까지 지급한 장학금이 총 2700억원에 이른다.
또한 2012년에는 서울대학교에 600억원을 기부하여 서울대 개교 이래 사상 최대의 기부금으로 도서관을 지어주셨다. 이종환 회장님은 최근 마지막 재산인 부동산과 현금 등 300억원을 정리하여 또다시 재단에 기부했다. 그동안 기부한 금액이 총 1조7000억원이 됐다. 개인이 설립한 재단으로는 아시아 최대규모라고 한다.
‘공수래, 만수유(滿手有), 공수거’ 실천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 회장님은 마산고 졸업 후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1945년 일본에 학도병으로 끌려가 소련과 만주 국경을 오가며 사선을 넘나들기도 하였다. 해방 후 ‘부국강병’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이 회장님은 1958년 신문물로 인기를 끌었던 플라스틱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1970년대에는 국내 유일의 ‘애자’(전봇대 등에 설치하는 절연용 지지물) 생산업체인 고려애자공업을 키워 많은 돈을 벌은 후 삼영중공업 등 16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삼영그룹을 만들었다
평소 “돈을 벌 때에는 천사처럼 벌 수는 없지만 쓸 때는 천사처럼 쓰련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공수래(空手來), 만수유(滿手有), 공수거(空手去)’라는 말을 스스로 만들었다. 즉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그냥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에 가득 채운 뒤에 그 돈을 사회에 돌려주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자장면과 된장찌게를 주로 드시면서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여 “자장면 할아버지”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
“우리도 노벨상 수상자 키워내자”
이 회장님의 최종 꿈은 ‘일류인재 양성’을 목표로 관정장학재단을 통해 장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지원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지원해준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을 타는 사람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줄곧 해 왔어요. 그런데 노벨상이 서구 쪽에 치우치고 있는 것 같아 아시아 쪽도 소홀하지 않도록 그런 상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하면서 ‘한국의 노벨상’격인 ‘세계관정과학상’을 만들고 싶어 했고, “생전에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보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하였다.
매년 5개 분야에 15억원씩 총 75억원의 상금을 주는 과학분야 상을 제정하겠다는 2019년 연말의 구상이 밝혀지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재원과 상금의 규모가 노벨상보다 크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상을 제정하는데 필요한 상금의 재원을 올해 하반기부터 확보가 예정된 가운데, 지난 9월 13일 갑자기 별세하여 너무나 안타까웠다. 장남 이석준 삼영화학 회장은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어 앞으로 관정재단이 더욱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종환 회장님의 꿈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관정재단을 통해 23년간 장학금 혜택을 받은 장학생이 1만2000여 명이나 되고, 이중 미국 등 세계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 750여명, 국내외 유명 대학교수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가난한 젊은 청소년들에게 청운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신 우리 사회의 영웅!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종환 회장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이 회장님의 명복을 빈다.